가끔 이런 생각을 함.
우리는 TV 같은 매체에서 범죄자를 보면 “저런 나쁜 놈!” 하고 욕을 함.
그리고 저런 행동이 왜 잘못됐는지, 어떻게 규제해야 하는지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분노와 함께, 그리고 아주 시끌벅적하게 말이야.
근데 진짜로 ‘범죄자의 심리’를 이해하는 순간은 우리가 직접 그 범죄자의 자리에 설 때임. 예를 들어, 음주운전이 나쁘다는 사실, 왜 나쁜지에 대한 이유는 모르는 사람 없음. 사고를 낸 당사자도 이걸 인지적으로 모르지는 않음. 마치 폭행을 일삼는 사람조차도 "다른 사람을 때리는 건 나쁜 행동이에요"라는 문장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표현이라는 걸 머리로 알고는 있는 것과 같음.
그런데 인지와 마음은 다른 영역임.
당사자만 알 수 있는 마음의 영역
음주운전자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운전자가 겪었던 순간의 유혹을 실제로 느껴본 사람뿐임. ‘이 정도 거리는 괜찮겠지’, ‘아직 정신 멀쩡하니까 문제없을 거야.’ 이런 식으로 범죄가 발생하는 그 찰나의 순간 겪는 마음은 사실 직접 겪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하려면 할 수는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그 행위의 부당함에 대한 반발감 때문에 에너지를 굳이 범법을 저지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쓰려고조차 하지 않음.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어떤 나쁜 행동을 했을 때, 그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의 마음은 당사자만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임.
나부터가 범죄자가 되고서야, 혹은 범죄자가 되기 바로 직전까지 가서야 "아, 이런 식으로 범죄자라는 부류의 사람이 생기게 되는 거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데, 행위라는 찰나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세상으로부터 나쁜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게 되는 거지. 생각보다 선량한 시민과 범죄자를 구분하는 경계가 그렇게까지 두텁지 않음.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 행동이 정당해지는 건 아니라는 거임.
그래서 세상은 항상 ‘행위자’를 ‘관찰자’가 바라보고, 판단하고, 규제하게 돼 있음.
마음에 대한 이해는 정당성에 대한 판단을 흐린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옴. 내가 행위자가 되면 그 행동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과 그 안에서 느껴지는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게 됨. 근데 남이 한 행동은 그냥 관찰만 하는 입장이라 그 마음을 이해 못함. 사람들은 이 ‘이해’를 ‘정당성’이랑 헷갈려함. 마음이 이해되면 = 정당한 거 같고, 마음이 이해 안 되면 = 부당한 거 같고,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거임.
이런 맥락에서 사기라는 행위를 살펴보기로 했음.
사기꾼에게 사기는 세상을 살아가는 노련한 전략일 뿐
사실 사기를 치고 있는 당사자는 사기가 남을 속이는 나쁜 행위라는 생각보다는 본인이 세상이 작동하는 은밀한 방식을 보다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을 노련하게 이용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음. 나는 이걸 이 블로그를 만들면서 깨달았음.
초반엔 나한테도 아름다운 꿈이 있었음. "외로운 소수자들을 위해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는 블로그를 만들겠다."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정말 그 어떤 공공기관의 웹사이트에서도 제공하지 않는 최상의 UI를 개발해서, 조금만 불안이 올라오면 가장 먼저 찾아와서 그 불안을 식히고 싶은 편안하고 유익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런 꿈이 있었음.
그런데 세상이 내가 그리던 꿈에서의 방식처럼 작동하지를 않는 거임. 아무도 "아, 외로워서 블로그 검색을 해 봐야겠네?"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하지 않음. 아리따운 글을 원하지도 않음. 내 블로그는 어떤 근사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공연이 아니라, 실은 길가에 애처롭게 서 있는 가판대 같은 거였던 거임, 시선을 사로잡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행동 방식과 그런 방식들이 많이 모여 이루어진 "세상의 알고리즘"에 눈이 떠지면 떠질수록 내 행동은 점점 "기존의 블로거"들처럼 변해가더라고. "이럴 수밖에 없네", "세상을 이용하려면 이렇게 하게 되네" 하는 합리화와 함께 말이야. 만약 누가 "왜 포스트에 광고를 넣어요?", "왜 이렇게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흔한 주제를 다뤄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럴 수밖에 없더라고요"라고 답하겠지.
내 행동이 "남을 속이는 나쁜 행동"은 아니니 나는 사기꾼은 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자신의 행동을 세상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서 나오는 노련한 전략이라고 여기는 순간 사기라는 것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겠다 싶더라.
상대의 행동을 내 전략 안에 가두다
그런 깨달음을 얻고부터 사기꾼들의 행동, 그 행동 안에 담긴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고.
화법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상대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도구" 같은 거거든? 예를 들어 내가
"오늘 날씨 참 좋죠?"
라고 말문을 열면, 상대의 세계는 순식간에 "오늘 날씨에 대한 대답"이라는 공기 안에 갇히게 돼. 그에 대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거지. 그러면 "네, 오늘 날이 시원해졌네요" 하는 식으로 대답을 하겠지? 이건 어떻게 보면 "상대의 특정 행동을 내가 이끌어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어.
이렇게 소비자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읽어내서 그 행동을 하게끔 만드는 게, 그냥 평범한 마케팅 전략이 될 수도 있지만 사실 사기도 작동하는 근본적인 메커니즘이 동일하다고 나는 봐.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내가 예측할 수 있으니까, 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거고, 그런데 그것이 진실 기반이면 평범한 마케팅, 거짓 기반이면 사기가 되는 거지.
나만 알 수 있는 거짓을 진실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게 사기의 씨앗이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