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탄생을 ‘당하는’ 거임. 인간은 자기가 어떤 인간이 될지를 유체이탈해서 미리 설계한 뒤, 다시 육체로 들어와 “짜잔!” 하고 태어나는 존재가 아님. 이미 설계된 상태 자체가 곧 ‘나’인 것임.

이 주제는 종종 자유의지 문제로 이어짐. 과연 인간이 하는 선택 중에 정말 순수하게, 본인이 주체가 되어 한 결정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예를 들어, “나는 좋은 사람이 되겠어!”라고 다짐하고 남을 돕는다면, 그게 정말 나의 의지일까? 아니면 그런 다짐을 하게 된 배경조차 내 유전자와 환경의 산물인 걸까? 이런 질문은 한번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음.

우울 또한 마찬가지임. 우울해지기로 ‘선택’한 사람은 없음. 물론 나의 경우, 우울한 상태 안에 폭 젖어 있을 때 오히려 묘한 편안함을 느끼는 성향이긴 함. 하지만 그 성향조차 내가 만든 게 아님. "이런 성향으로 태어나는 운명에 내가 당한 것"이지.

인간을 가장 두렵게하는 건, “내가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임. 그런 종류의 고통 중에는 누군가와 잘못 맺은, 혹은 부득이하게 맺어진 관계 안에서 당하는 폭력이라던가, 아니면 가난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함. 

외모는 사람을 위축되게 만드는 거의 1순위 요소임. 근데 이게 단순히 ‘잘생겼다, 못생겼다’ 때문은 아님. 외모가 고통의 핵심 화두가 되는 것은 외모 자체가 가진 ‘캐릭터’가 본인의 실제 성격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고, 사회 속에서 얼마나 무리 없이 편안하게 섞일 수 있느냐임.

예를 들어 못생긴 외모라 하더라도, 그 얼굴에 약간의 유쾌함이 묻어나고, 본인이 실제로도 주변 사람들을 웃기는 걸 좋아한다면, 그 외모는 나름 잘 기능하는 외모임. 단순히 미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해서 삶에 불편을 주는 건 아님.

문제는 사람들은 외모로부터 인상을 받고, 그 인상으로 타인을 대한다는 점임. 내가 원하는 대우와, 외모가 자아내는 인상 사이에 간극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 순간 외모는 장애 요소로 기능하게 됨.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어떤 외모를 가졌느냐에 따라 "이 사람은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간다!" 소리를 드기도 하고, "못미더워..." 소리를 드기도 함. 못미더움의 당사자가 되면 그 상황이 많이 억울하긴 하지만, 실제로 세상살이에서 외모로 인해 행위의 의미까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매우 흔함.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말은 맞는 말임.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판단을 "하려는" 게 아님. 다만, 본능적인 미적 감각에 따라 어떤 인상을 받고, 그 인상이 자기 감정과 반응을 일으키는 것임. 예쁜 꽃을 보고 "와, 예쁘다!" 하는 게 어떻게 판단이겠어, "너무 예뻐서 꽃이랑 같이 사진을 한 장 찍고 싶다!" 하는 게 어떻게 판단이겠어. 

이를테면, 어떤 공간에는 빨간색이 더 어울리고, 어떤 곳에는 세모가 자연스러움. 거기에 파란색을 칠하거나 네모를 억지로 넣는다고 해서 사람들의 감각이 그걸 ‘똑같이’ 받아들여주길 바라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일 수 있음.

“내가 이렇게 생기긴 했지만, 이 생김새에 나를 가두지 마라”는 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당한 요청임. 하지만 형태를 가진 존재물인 이상, 그리고 ‘눈’이라는 감각기관으로 서로를 인식하는 동물인 이상, 외모라는 족쇄에서 완전히 자유롭긴 어려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외모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함. “나는 못생겼어”라는 말은 오히려 상처받기 전에 자기를 선제적으로 방어하려는 표현이지, 그것이 메타인지라거나, 냉정한 자기 인식인 건 아님.

대체로 사람들은 본인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모르고, 이유도 모른 채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누군가에게 이유도 없이 차이기도 함. 때로는 쌍방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안에 본인의 외모가 얼마나 작용했는지는 알지 못함.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서 내 외모가 차지하는 지분이 몇 퍼센트인지도 모른 채, 그냥 그렇게 정을 쌓고 관계를 이어가며 살아감. 건강한 보통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사는 거임, 영문도 모르고. 

근데, 외모에 대한 감각이 예민하게 깨어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외모는 삶의 거대한 이슈로 떠오름. 말했듯, 우울은 멍청해지는 게 아니라 너무 똑똑해지는 것임.

원래 같았으면 그냥 대충 모르고 지나쳤을 것들에 대해 지나치게 선명하게 눈이 떠지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게 됨. 그게 바로 우울임. 지독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감각이 깨어난 순간부터는 되돌아갈 수 없게 됨. 이미 알게 된 것을 다시 모르기만큼 어려운 게 없지. 그래서 우울에 한번 빠지고 나면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은 거야.